대만 설 풍습(1), 기묘한 과화 @230109 story of taiwan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 중의 하나인 불은 많은 신앙에서 정결케 하는 것의 상징으로 사용되는데 매년 음력 11월 15일 타이완 북부 이란(宜蘭)현 우제(五結)향 쩐안(鎮安)촌에 있는 얼제(二結)왕공(王公)묘에서 거행되는 ‘과화(過火)’ 의식은 또한 같은 의미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과화’는 맨발로 뜨거운 슻불더미를 건너는 의식입니다. 타이완 뿐만 아나라 기타 문화권에서도 과화 의식을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과화 의식의 역사는 기원전 1200년경 인도 철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당시 과화 의식은 힘과 용기가 얼머나 강한지, 종교적 신념이 충분히 확고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쓰였습니다. 얼제왕공묘의 과화 의식은 신이 액과 재앙 등을 억제하고 쫓아낼 때 몸에 묻은 불결을 불로 제거해주고 신력을 영원히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얼제왕공묘는 ‘고공삼왕(古公三王)’을 모시고 있습니다. ‘고공삼왕’은 약칭으로 ‘왕공’이며, 중국 푸젠(福建)성 장푸(漳浦)현에서 모시던 신으로, 남송 말기 때 중국에 침입해 들어온 몽골군에 저항한 세 명의 군사를 가리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3명 군사는 각각 의술, 풍수지리, 도술(道術)에 능통했으며, 유비와 관우, 장비처럼 결의를 맺어 의형제가 되고 나라를 위해 몽골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후 백성에게 신으로 모셔지기 시작됐다고 합니다.
청나라 시기인 1786년, 한 푸젠 사람이 고공삼왕의 본존을 가지고 타이완에 와 지금의 얼제 마을에서 모시기 시작했고, 이후 신도들이 타지로 이주함에 따라 고공삼왕 신앙은 타이완 기타 지역으로 펴졌습니다. 현재 고공삼왕을 모시는 사당의 수는 50개가 넘으며, 타이완의 독특한 고공삼왕 민간 신앙 체계를 이뤘습니다.
고공삼왕, 즉 왕공의 탄신 축하를 위해 매년 음력 11월 15일에 거행하는 과화 의식은 청나라 시대 이래 얼제왕공묘의 주요 축제로 행해지면서 지금까지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국가문화총회’에서 타이완의 10대 민속 축제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이란현 민속 활동으로 공고됐습니다. 이 축제의 중요성은 이란 지방에서 전해지는 속담 ‘왕공의 탄신날만 걱정하고, 설날을 걱정하지 않는다(驚王公生,不驚過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속담은 설날 준비보다 과화 의식도 하고 성대한 제사도 지내야 되는 왕공의 탄신날 축하 행사를 여는 데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해 왕공 탄신날 축하 행사를 열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없을까 봐 걱정한다는 말로써 현지 주민들이 왕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줍니다.
과화 의식 진행 전에 ‘지퉁(乩童) 찾아내기’라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의식은 먼저 진행되는데요. 지퉁은 신에게 빙의되어 인간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종의 무당입니다. 왕공 탄신날 당일 오후 1시가 되면 왕공은 군중 속에 숨어 있는, 평상 시 자신이 빙의하는 지퉁을 직접 찾아내며 이를 통해 자신의 막대한 신력을 신도에게 보여주는데 지퉁을 성공적으로 찾아내지 못하면 과학 의식이 시작되지 못합니다. 원래는 지퉁이 아닌 귀신에 씌인 사람을 찾아내 그들을 과화를 하고 제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는데 현재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지퉁을 찾아내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의식이 정식적으로 시작되기 전, 사찰 측은 교 던지기를 통해 왕공에게 지퉁의 현재 위치의 방향을 묻는 다음에 왕공 신상이 타는 가마를 메고 왕공묘 인근의 마을로 가서 왕공의 지시에 따라 지퉁을 찾기 시작합니다. 지퉁은 왕공에게 발견되자 ‘빙의’ 상태가 되는데, 2미터 길이의 구리 침을 양 볼에 뚫고 전용복을 갈아입은 후 가마 위에 서서 흑령기(黑令旗)라고 불리는 검은 깃발과 법기를 휘두릅니다. 이 가마는 신도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각 구역을 행차하고 왕공묘에 다시 돌아가면 과화 의식이 시작됩니다.
과화 의식 준비를 위해 현지에서 존경을 받는 연로자나 경험이 많은 유지들이 일찍이 오전 7시에 왕공에게서 동의를 구한 후 불을 피웁니다. 모든 준비가 다 완료되면 오후에 교를 던지기로 왕공의 지시를 받아 과화를 진행합니다. 초기에는 약 2만 근에 달하는 목탄을 사용했는데 현재는 환경 보호를 위해 1만여 근으로 줄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축제는 과화 의식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매년 수십 개의 신명 가마가 참가하는데 먼저 숯불더미 주위를 두 바퀴 돈 후 차례로 줄을 섭니다.
교 던지기로 왕공의 동의를 받은 후 폭죽과 연기, 하늘을 찌를 듯한 징과 북소리의 응원 속에서 먼저 흑령기를 든 사람이 숯불더미를 건너며 안전성을 확인합니다. 이어서 신도들이 신의 위계 순서에 따라 가마를 메거나 신상을 안고 차례차례로 숯불더미를 건넙니다. 전체 의식은 약 1시간 가량 진행됩니다. 의식이 끝난 후 신도들은 가족의 옷을 들고 숯불더미 위에 흔들면서 불결함과 액운을 없애기를 빕니다. 또, 남은 재는 집 밑에 묻히면 집과 사람의 평안을 지킬 수 있고, 가축에게 먹이면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해서 신도들은 항상 앞을 다투며 재를 가지고 떠납니다.
한편, 과화를 하려는 사람은 사전에 엄격한 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이 금기에는 의식 3일 전부터 성관계를 하지 않고, 채식을 통해 몸을 정화하는 등이 포함됩니다. 가족 중에 상을 당한 사람이나 분만실에 들어간 사람이 있으면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되므로 과화 의식에 참가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마가 땅에 떨어지거나 사람이 화상을 입는 등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얼제왕공묘의 과화 의식(二結王公過火)은 숯불더미 건너기와 지퉁 찾아내기 등의 의식 자체가 지방적 특색과 종교적 정결의 의미를 지닌 것 외에도,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전통 예술 공연과 희곡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고 있어 이란 현지의 중요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