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군인 아파트, 궈마오신촌果貿新村 @230119 story of taiwan
바위에 꽂힌 성검을 뽑아 잉글랜드 전설의 왕이 된 아서 왕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용맹하고 충성심 높은 기사들이 많았는데, 그 기사들을 우리는 흔히 ‘원탁의 기사’라고 부르곤합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아서 왕을 따르는 용맹한 기사들 앞에 ‘원탁’ 즉 ‘원형 탁자’라는 수식어가 붙은 걸까요? 아서 왕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아서 왕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식사 시간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탁자에 앉는 순서와 자리배치 때문에 기사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기고 맙니다. 생각보다 다툼은 심각하게 번졌고, 급기야 검을 겨누고 싸우다가 사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죠.이런 일을 안타깝게 여긴 아서 왕은 자리 배치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서로 칼을 겨누는 일이 생기지 않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원형 탁자’였습니다.
아서왕이 커다란 원형 테이블을 도입한 이후 원을 따라 어디에 앉더라도 상하 관계가 드러나지 않고 나아가 기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평등하고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좌석 배치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원탁의 기사’란 아서 왕의 전설에서 등장하는 이 13개의 자리가 있는 원탁에 둘러 앉은 기사들을 의미하게 되었죠.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마주보며 기탄없이 의견을 나누며 평등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아서왕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원형 탁자는 오늘날에도 화합과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이나 정치회담에서 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누가 중간에 앉느냐, 누가 먼저 등장하냐, 의자높이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결과적으로 동그랗게 모일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을 선택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1959년 미국, 영국, 프랑스, 구 소련 4개국 정상회담때 회담 전부터 회담 테이블 모양을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을 벌인 끝에 4개국이 도넛 모양의 원탁을 중심으로 둘러 앉고 동독과 서독대표들이 두개의 사각테이블을 원탁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분리시켜 배치했고, 또한 베트남전을 마무리짓기 위해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사이공 정부측, 그리고 하노이 측이 회동해 휴전을 준수하고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파리 협정》 회담때도 원탁이 효율적이란 사실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원탁이라는 말도 단순한 탁자모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회담에서의 상호신뢰와 협조 정신을 일컫는 단어로 자주 쓰이고, 원형 테이블에 모여서 하는 회담 즉 ‘원탁회의’란 말은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표방한 평등한 국제회의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원탁의 기사, 정치적인 원탁 회의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럿이 한 곳에 모일때면 자연스레 동그랗게 모입니다.
어린시절 수건돌리기 놀이할 때도 동그랗게 앉고, 서바이벌 게임을 할때도 동그랗게 모여 작전을 짜고, 심지어 운동회에서 단체전이나 혹은 축구 시합 전 파이팅을 외칠때 조차도 우리는 동그랗게 모이죠.원형으로 동그랗게 모이는 우리 인류. 따라서 원형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구경기장, 극장과 같은 건축물에 적용되기도합니다.고대 문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탈리아 로마, 로마 유산 가운데서도 고대 로마 제국의 검투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맹수와 전투를 벌였던 콜로세움은 로마제국의 뛰어난 기술력, 정치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로마제국의 상징이자 원형 경기장에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맹수 우리, 검투사 대기소,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입니다. 맹수와 적군이었던 전쟁 포로를 싸우게 하여 그들이 흘린 피로 전사한 고인의 영혼을 달랜다는 종교적 의미로 검투사 경기를 구경하는 로마 시민 수만명의 함성이 아치문 밖으로 울려 퍼지던 콜로세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신의 명의로 3차례, 아들과 손자의 이름으로 5차례 검투경기를 주최해 로마 제국의 단합과 안녕을 다지는 방편으로, 나아가 로마 국민들에 호감을 얻고 정치적 입지를 굳혀 나갔습니다.
2000여년 전 적군 포로와 맹수를 싸우게해 결속과 단합을 다진 로마 제국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그럼 주거공간이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아파트 방들이 동그랗게 모인다면 말입니다.
타이완 남부 제1의 항구도시 가오슝시 줘잉구(左營區) 궈마오신촌(혹은 궈마오셔취 果貿社區)에는 네모 모양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와는 달리 시대를 앞서간 독특한 원형 모양의 군인아파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국공내전 이후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온 국민당군은 병영에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동반한 가족들까지 수용하기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당장 주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 부대는 주둔지 부근이나 도시 외곽에 목조 가옥을 지어 부대원 가족이 생활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수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가오슝시 줘잉구 궈마오신춴에는 개별 군인 관사촌 가운데서도 가장 큰 2,100가구 규모의 해군과 그들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1965년 완공되었고, 이후 자녀가 태어나고 군인 관사촌내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군인과 가족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국방부는 1977년 궈마오신춴을 보육시설, 이발소, 세탁소, 잡화점 등 실용성을 갖춘 복합용도의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계획을 추진했고, 군인과 가족 나아가 저소득층 가정까지 5,000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복합공동주택은 1984년 완공됐습니다.군인과 가족들에 안정된 주거생활을 지원함으로써 근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복합주거시설로 재건축된 궈마오신촌 내 아파트는 지상 18층, 지하 1층으로 건립되었고, 총 13개 동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80-90년대 불과 30년전까지만하더라도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높은 군인 아파트를 울타리 삼아 이곳 주민들은 외부인과는 왕래없이 독특한 공동체 생활을 왔습니다. 그러다 집과 집사이 간격이 워낙 좁아 다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의 독특한 외관이 마치 홍콩의 벌집 아파트를 연상시킨 다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오슝의 작은 홍콩’이라고 불리며 궈마오신춴이 SNS에서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많은 외지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다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의 독특한 외관이 마치 홍콩의 벌집 아파트를 연상시킨 다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오슝의 작은 홍콩’이라고 불리는 궈마오신춴.
특히 궈마오신촌 내 원형의 중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8동과 9동 이 두 개의 반원형 아파트 건물이 있는 곳은 포토존 스팟으로 각광 받는 핫한 장소입니다. 궈마오신촌 내에서도 이 곳이 유독 각광 받는 이유는 이 두 개의 반원형의 8동과 9동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원에 둘러쌓여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적으로부터 성안에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겹겹이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린 중세시대의 웅장한 원형의 성체주택 내에 있는것 같은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중화민국 해군과 가족들의 보금자리로 완공된지 2,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요즘 웬만한 아파트들보다도 눈길을 사로잡는 세련되고 기하학적인 동그라미 원형의 궈마오신춴 내 아파트 건물이 최근 가오슝시 지역 홍보 영상물과 예능 방송을 타면서 궈마오신춴은 방문객이라면 꼭 찾아야 할 레트로 관광명소로 큰 사랑을 받으며 가오슝시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습니다.